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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뚜껑
맨홀뚜껑 윤 언 자 ​ 바람이 분다. 아래를 보고 걷는다. 땅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고개 들어 싱그런 하늘을 보면서 구름에 실려 가기도 해본다. 늘 나무와 이야기 하고 다니기만 했지 길을 걸어도 맨홀을 지나치기만 했다. 별로 주목도 받지 않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나간 세월동안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지나갔어도 흔적도 없다. 아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다. 비가 오면 깨끗하게 씻기기도 한다. 스스로는 자정을 거의 못한다. 눈이 오면 그때나 하얀 솜이불로 치장을 해 본다. 그렇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이다. 눈이 어느 곳보다 빨리 녹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올 때면 갈색 낙엽이 그들 위를 덮어주기도 한다. 그러기 이전에는 맨날 맨몸으로 부끄럽게 지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내 맨 몸을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어떤 멋쟁이가 맨홀뚜껑에 낀 구두 굽을 빼내려고 빠르작거리다가 그만 넘어진다. 마음은 투덜거린다. 그들 때문에 새로 산 구두가 얼마 신지도 못하고 상처가 났다. 맨홀 뚜껑은 긴 사각형, 정사각형, 둥근형, 둥그스런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크기도 긴 것도 짧은 것도 둥근 것도 큰 오바 단추 같은 작은 것도 있다. 관심이 없을 때는 벌로 보이던 것이었다. ‘전화’라고 쓰여 있는 긴사각형 맨홀뚜껑은 내 걸음으로 30 보마다 하나씩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언제부터 맨홀뚜껑이 별모양, 꽃 모양 등으로 더욱 섬세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색깔로 치장하여 땅에 있는 작은 것에도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도 더러는 맨홀주변에 노란페인팅을 해놓은 곳도 있다. 더러는 연한 보랏빛, 아니면 연한 파란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티브에서 마침 맨홀뚜껑을 만드는 주물회사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 뚜껑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공정은 남다른 애정이 없으면 힘들고 더워서 해 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본적이 있던가? 그 분은 그런 뚜껑을 만들면서 아마 인생이란 이렇게 공을 들이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음을 깨닫지 않았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일이 힘들지만 이것이 쓰여 질 것을 생각한 것 같다. 몸체가 있으나 뚜껑이 없다면 완성이 되지 않는다. 뚜껑은 말한다. ‘길 가다가 더러 둥근 것도 있고 사각형도 있는 곳을 밟으면서 이왕이면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가면 될 것이야. 그래도 우리가 있어서 이 세상을 편하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지 않던가요.’ 맨홀은 지하에 묻어 놓은 하수관이나 오수관 등의 시설물을 점검하거나 청소할 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구멍이다. 그것 위에는 통신, 오수, 상수, 도시가스, 하나로 텔레콤, KT, police 라는 등등의 간단한 글자가 있다. 방사형과 일직선 사방무늬도 곁들여 디자인돼 있어 그나마 단조롭지 않다. 가을이 다 지나갈 무렵 길에 나가면 맨홀뚜껑을 열어놓고 아저씨들이 작업 하는 장면을 더러 본다. 맨홀뚜껑의 모양이 둥근 것은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의 몸이 원통형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한편 무거운 맨홀 뚜껑을 운반할 때 원형은 굴릴 수 있으므로 편리하다고 한다. 둥근 것이 우주의 근본원리라고 듣지 않았나.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그곳도 그런 이치가 담겨있기도 한 것 같다. 친절하게 뚜껑에는 손잡이도 더러 있다. 맨홀만 있고 뚜껑이 없다면 어떨 것인가? 뚜껑으로 인하여 완성되는 그 무엇이 우리 삶에서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에 잠긴다. 나를 덮고 있는 뚜껑은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을까? 겉으로는 나를 덮어주는 옷, 모자, 신발, 장갑, 머풀러 등일 것 같다. 내면으로는 마음을 닫아 줄 뚜껑이 있어야겠지. 배려의 뚜껑이 없이 되는 대로 내 마음이 돌아다닌다면 누군가에게 가슴이 서늘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음의 뚜껑을 한 번씩 열어서 뚜껑에 서러움이 북받쳐 있진 않은지? 미움이 가득 붙어 있지나 않은지 나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있으면 한다. 뚜껑 한 번 닫았다고 그냥 놓아두니 어떤 때는 시기, 질투의 곰팡이가 가득하다. 막혀서 통하지도 않는다. 마음의 물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이리로 저리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되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혹여 누군가 나의숨기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겠나? 그냥 닫아 놓고만 무심하게 살고 있었다. 그 동안은 소홀했더라도 배려와 감사로 씻어진 뚜껑이 잘 닫아져 있어야 마음의 맨홀이 잘 지탱하게 됨도 조금은 알 듯하다. 맨홀뚜껑이 제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삶을 구가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어온다. 낙엽으로 덮여진 맨홀뚜껑이 제 모습을 단장하고 있다. 내 뚜껑은 어떻게 보여질까?
윤언자 , 2017-10-14 , 조회 31 , 추천 0 , 반대 0 , 파일수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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